집을 읽다- 소공녀 (Microhabitat, 2017)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욕망의 집집은 욕망의 산물이다. 거주의 개념을 넘어 현재적 신분과 성취를 세상에 드러내는 명함과도 같으며 나아가 인생의 성과까지 따져 볼 만큼 키를 세웠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더욱 사랑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있어도 부동산이나 재산을 더 이상 불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죽기 직전까지 부동산과 재산을 불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도 현실이다. 그러한 현실의 한가운데

조커를 찾아서- 웃는 남자 (The Man Who Laughs, 2012)“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영화 호아킨 피닉스의 영화 가 화제다. 범죄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2008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를 다시 꺼내서 이미 고인이 된 히스 레저를 추모하기도 한다. 영화 는 주인공인 아서 플렉으로 열연했던 호아킨 피닉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기도 하고, 극도로 양극화된 신자유주의를 바라보는 세태가 반영이 되었다고도 본다. 미국은 물론이고 영화 한 편을 앞에 놓고서 우리가 긴장

너와 나만의 시간-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2018)만남톨스토이가 항상 옳았다고 생각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할 때이다. 인간의 마음 안에는 사랑이 있고, 인간은 자신의 내일을 알 수 없으며, 인간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 그 진리는 나이를 먹거나 때와 장소가 다르더라도 늘 옳았다. 더하여 인간은 내일을 알 수 없지만 만남 또한 예측할 수 없다. 최승자 시인의 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랑은 언제나 / 벼락처럼 왔다가 / 정전처럼 끊겨지고 / 갑작스런

내 마음의 상자- 그녀(Her, 2013)"마음이 상자도 아니고 다 채울 순 없어." 어떤 사랑사람을 닮은 모형 인간의 등장으로 인터넷이 시끌벅적하다. 윤리적인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상상은 과학과 손잡고 속속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인간이 아닌 기계와의 접속과 사랑은 완성될 수 있을까? 컴퓨터가 처음 우리 곁으로 왔을 때, 화면 저 너머에 있는 세상과 현실이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지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세컨드 라이프라는 삶이 존재하고 우리의 아바타가 거기 공고히 서서 또 다른 나로 세상을 살아갈 줄 몰랐다. 하지만 컴퓨터는

인생은 된장처럼- 된장(The Recipe, 2010) 냄새에 관한 기억어쩌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게 되었는데, 도배지의 풀이 약간 상해있었다. 이 정도쯤이야 어쩌랴, 싶어서 도배를 감행했는데, 그 이후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야겠다. 나는무력했고, 냄새는 완강했다. 악취는 기어이 선을 넘고 층을 넘어 스멀거리며 퍼져나갔고, 그 가열한 전진을 막을 도리가 내게는 없었다. 영화 에서 가장 충격적이고도 사실적인 공감을 받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냄새’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누적된 삶의 흔적이 쌓이고 쌓여 몸에 배어버린 것이 바

당신의 아이로 살아가는 법- 가버나움(Capernaum, 2018) 사실과 허구 사이올해 초, 2018년에 발표된 이 작품을 보기 위하여 관객들이 발 벗고 나서서 상영관을 확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레바논 최초의 여성 감독이 칸 영화제를 울렸다는데, 한 소년이 부모님을 고소한 실화 같은 작품으로 이제 세계인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열연한 아이들은 현실에서도 영화 속 캐릭터와 같은 상황을 겪어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사실과 허구 사이의 간극이 필요 없고, 또한 그 지점이 우리로 하여금 영

가족이니까…- 현기증(Entangled)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족이니까” 이 말속에는 숱한 역사와 굴레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족이니까 함께 있어야 하고 양보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나아가 행복해야 한다’라는 명제는 늘 우리에게 숙제처럼 남아 있다. 가족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서로 품어줄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긴장과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 점이 영화를 선정할 때 가장 마음을 무겁게 했다. 부산영화제가 발굴했다는 31살의 괴물 신인 이돈구 감독은 데뷔작 을 뛰어넘는 문제작

사랑을 믿니?누구나그렇긴 해사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특별한 생동감이나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서는 마치 감전이 되듯 짜릿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는 것 또한 보편적인 감정이다. 이 작품은 ‘프레골리 증후군(Fregoli delusion)’을 보이는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랑과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참고로 ‘프레골리 증후군’은 주변의 모든 사람이 사실은 한 사람의 변장이라고 믿는 정신 질환의 일종으로 레오폴드 프레골리라는 연극배우가 다양한 인물로 변신하는 데

형제, 머나먼 여정- 유레루(Sway, 2006) 카인과아벨처럼 형제는 가장 친밀하면서도 가장 오랜 기간 경쟁하는 라이벌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던 때부터 성인이 되어 나이를 먹어가면서까지, 어쩌면 마지막까지 경쟁의 끈을 놓지 못하는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성서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은 형과 동생인데 질투와 폭력이라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 그런 형제의 미묘한 심리를 드러낸 영화 는 ‘흔들리다’를 뜻하는 일본어이며, 이 작품의 영어 제목도 이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유레루를

전설이 된 남자-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2018) 그가 나타났다‘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영화, 변방의 이방인에서 전설이 된 남자가 있다. 영국 출신 밴드인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 영화 를 드디어 안방극장에서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이민자 출신의 아웃사이더로 공항에서 일하던 그는 로저 테일러, 브라이언 메이, 존 디콘과 함께 영국의 두 번째 여왕이라는, ‘퀸’의 신화를 만든다. ‘퀸’을 들으며 자랐던 기성세대나 그들을 잘 몰랐던 청년들이나

타인이라는 이름의 당신타인은 지옥이다사르트르의 이 말 속에는 현대인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어 있다. 원하건 원치 않건 그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는 무수한 타인과 겹겹이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타인과 더불어 살면서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는 동안, 단절과 좌절을 겪으며 또한 완전한 혼자임을 깨닫기도 한다. 이탈리아 영화 (2016)를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대중적으로도 흥미로웠지만, 작품에 대한 몰입도도 상당하였다. 마치 거울 속의 나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우리의 현실과 닮았

너희들을 잊지 않을게그들은 누구인가새해가 밝았다. 여기저기서 어렵고 고단하다는 얘기가 들려도 가족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 올해는 남북화해 분위기가 더욱 진전될까?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다는데, 어쩌면 남북이 손을 잡고 분단을 넘어 함께 걸어갈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추상미 감독이 던진 이 한 편의 영화가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분단시대의 가장 큰 아픔이고 슬픔이 되었던 아이들의 이야기. 그들은 누구일까? 영화 이후 5년 만에 추 감독이 들고 온 이 작품 속의 아이들은 여전히 역사의

경계에 서다부시맨이 되고 싶은 자1980년에 제작된 영화 은 웃음 끝에 고민을 남겨둔다. 굳이 구분하자면 현대문명으로 대변되는 ‘콜라병’의 존재에 대한 그들의 ‘앎’과 ‘경험’은 그들이 처한 현실과도 직결된다. 조종사가 무심코 버린 콜라병은 추장에 의해 '신의 물건'으로 격상되고, 우리가 무심코 버린 콜라병의 다양한 쓰임새는 웃음을 넘어 진지한 고민을 안겨주기도 한다. 향후 이 세상에서 더욱 극단적인 문화 간극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인터넷을 얼마나 접하느냐, 접하지 못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를 쓴

커피 한잔 하실래요?혼자 마시는 커피예나 지금이나 커피는 혼자 마시는 게 가장 익숙하고 좋다. 이런 성향을 내보이면 다소간의 염려와 핀잔이 돌아오기도 한다. 세상에 커피 한 잔도 마음대로 못 먹는다는 게 말이 되나 말이다. 그런데 또 살다 보니 때로는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나 좋아하는 사람과 조용한 바닷가 근처에 가서 마시는 커피는 도시인들에게 일종의 로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대만 감독이 제작한 이 작품은 도시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과 같다. 커피를 로스팅하는 과정을 통 하여 삶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하룻밤 잘 자면 되겠거니 했는데…" 노래하는 남자, 르윈내일은 오늘과 다른 날이 올까. 포크송 가수 르윈 데이비스에게는 연락할 집 주소가 없다. 지인들의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하고 어쩌면 매일 아침은 저녁의 잠자리를 향하여 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르윈으로 분한 아이삭은 줄리아드 음대를 나온 재원으로, 밴드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은 적이 있다고 한다. ‘Hang Me, Oh Hang Me’는 데이브 반 롱크의 유명한 곡 가운데 하나인데, 르윈(오스카 아이삭)에 의해서 새로 탄생한다. ‘가스등’에서 노래하는 남자, 르

오늘은 내 생에 최고의 날“삶이 우리의 것이라는 걸 알고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이 또한 운명이라면어느 날 내게 시한부 삶이 던져진다면 나는 그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소 통속적인 주제에 과장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내 앞에 놓인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지극히 아름다웠던 풍광의 을 연출했던 훌리오 메뎀 감독은 이 영화에서 극한의 상황에 놓인 사람의 담대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늘 알고 있지만 잊고 지내는 것, 일상의 소중함이다. 그리고 아무리 사랑한다고 말해도 끝내

당신의 이웃은안녕하십니까?내 이웃을 소개합니다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를 읽을 때, 괴팍한 좀머 씨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이웃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이상한 지팡이를 들고 이웃들과의 교감을 거부한 채 마치 어딘가에 쫓기듯이 다니는 좀머 씨는 사실 우리 주변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고독과 상처를 이해해 줄 이웃이 있었다면 그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타인과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다.자신의 아집은 태산같이 높아지는데 세상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Nomad는 오늘날 자유롭고 창조적인 가치를 좇아서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떠나고 싶은, 부유하는 현대인의 삶을 단편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 ‘머무른 채로 떠나기’, ‘앉은 채로 유목하기’를 권하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그 마음을 안고 시공간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로 , 시리즈나 등을 접하기도 했지만 경주로 떠날 수 있는 티켓 한 장을 발견했다. 천년 고도의 도시, 경주

당신과 나의 이야기 어느 날, 우리는 만났다 나이를 불문하고 인간은 타인과 부단히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속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관계도 사람의 키를 닮아서 처음 시작할 때는 솜털처럼 뽀송뽀송하지만, 관계가 익어갈수록 사춘기의 아이들처럼 반항하고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면 성숙하고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면 곰삭은 젓갈처럼 상대에게 푹 젖어들게 된다. 영화가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어른들에게 권하는 것도 그러한 관계의 특성 때문이다.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 어쩌면 우리

작지만 큰 행복‘소확행小確幸’은 작지만 성취하기 쉬운 소소한 행복을 말한다. 1986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에서 거론됐던 이 말은 2018년 한국의 소비트렌드로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좋은 영화를 보는 기쁨, 따뜻한 빵을 좋아하는 친구와 먹는 재미, 한적한 산책길에서 봄꽃을 보는 일 모두가 소확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여백의 시간을 임순례 감독의 호흡으로 만나게 되었다. 임순례 감독을 떠올리면 이나 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2010년에 상영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