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라는 예술
다도라는 예술
  • 임지영 / 갤러리스트
  • 승인 2019.02.0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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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국립공원 안의 작은 갤러리. 통창으로 사계절이 들어오는 갤러리 아트 세빈에서 오후를 비운 사람들이 만났다. 차 한잔 마시자고. 한겨울 맑은 창 앞에서 차 한잔 마시자고. 다회에 모인 분들은 거의 낯설었다. 차를 오래 마셔온 분이 다회를 이끌어 주셨고 차를 열심히 마셔온 분이 추임을 넣으며 팽주(차를 따르는 사람)를 자처하셨다.

 

잔은 작았다. 향과 맛이 날아가기 전에 마시라고 그렇다 한다. 보이차의 유래와 과정, 역사를 들으며 우리는 차를 마셨다. 낙타 눈물 만큼에다가 호록 마시기도 딱 좋은 온도였다. 그리 비운 잔은 엽렵하게 바로바로 채워주셨다. 생차로 시작해서 숙차, 산차에 이르기까지 차의 맛은 각각 달랐다. 미묘하게 모든 맛이 유별했다.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어도 찻잎 하나도 고유한 것이었다.

 

좋은 차 고르는 법 이야기를 하다 들은 이야기. 보이차는 계속 변한다고 한다. 맛과 향이 계속 변화를 겪으며 안정기가 될 때까지는 생장한다는 것. 그러므로 맛없는 보이차라고 제쳐두지 말고 보관을 잘해두면은 내 영혼을 적시는 근사한 차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후발효라고 했다. 세월이라고 했다. 차를 진짜 차로 만들고 나를 진짜 나로 만드는 것은.

그곳에서는 때마침 김대훈 작가의 도자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투박한 흙이 시간과 열기를 견디고 도자가 되고 예술이 되었다. 작은 잔이며 단아한 합 하나하나에 기품이 온건했다. 그 기품이란 것은 예술에의 찬사이자 고통에의 헌사다. 묵묵하고 건강하게 살아온 흙이 뜨거운 고통의 불을 견디고 제 빛깔을 낼 때까지 기다려야만이 지닐 수 있는 기품. 고 작은 찻잔 하나도 아름다운 쓰임을 위해 불을 건너온 것이다.

 

다회를 한 며칠 후 몇이 모여 <일일시호일>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일본 영화로 다도와 삶을 이야기하는 잔잔한 영화인데 울림은 컸다. 일본의 다도는 무결한 형식 안에 담는 마음인데, 천천히 모든 감각을 깨워 차 한잔에 마음이 담기게 반복한다. 처음 다도를 배우는 어설픈 주인공이 물동이를 드는데 스승이 말한다. "무거운 것은 가벼운 듯, 가벼운 것은 무거운 듯 드세요." 마음에 콕 박히는 말이었다. 우리 삶도 그리 살아야 할 듯싶었다. 그리고 같은 사람들이랑 매양 차를 마셔도 같은 날은 하루도 없다며, 생애 단 한 번인 것처럼 대하라고. 인연의 귀함과 생의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일일시호일. 말그대로 매일 매일 좋은 날을 만드는 것은 바쁜 오후를 잠시 비워 작고 투박한 도자 잔에 잘 우려낸 차를 호록 호록 함께 마실 수 있는 지인들이 있는 것. 아, 이 차는 향이 참 좋네요! 다담으로 시작한 인생 수다를 구구절절 풀어놓는데도 흉볼 이 없을테다. 차 좋아하는 사람들은 본디 맑다.(고 우겨본다.)

 


 

정채희 개인전

ㆍ갤러리 아트세빈
ㆍ2.9 -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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