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쪽으로 걷다 -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젊음 쪽으로 걷다 -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 임지영 / 갤러리스트
  • 승인 2019.02.0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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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는 늙지 않는 거리다. 언제고 스물적 치기와 풋풋함이 가득하다.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연극 전단이 가득 붙은 거리 게시판과 들장미 소녀처럼 씩씩한 젊은이를 마주친다. 그녀는 솔톤의 경쾌한 목소리로 "우리 연극 보러오세요!" 호객이 아니라 당당한 고백 같다. 나는 연극을 사랑해요! 외치는 것 같다. 가벼운 미소로 응원하고는 마로니에 공원으로 접어든다. 공원은 부대 시설들도 늘어나고 깔끔해졌지만 오래전의 그 모습 그대로다. 공원의 안주인으로 여전히 당당한 아름드리 마로니에 나무, 그 아래 벤치에 앉아 분홍 솜사탕이 묻은 끈적이는 손가락을 쪽쪽 빠는 아이들, 공원 한 귀퉁이에선 버스킹이 한창이다. 아주 오래전에도 저이의 너스레와 기타를 들었었는데. 사람들 몇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그이의 낡은 기타와 오래된 목청에 박수를 친다. 세월을 받아들인 거리의 가수는 남루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이다. 부르는 이 듣는 이 모두 선한 미소를 하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의 붉은 벽돌 미술관. 아르코 미술관에 왔다. 이곳 대학로를 문화 예술의 랜드마크로 만든 것은 모두 건축가 김수근의 이 붉은 건축물들 덕분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 자주 왔다.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연극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도 보았고, 바탕골 미술관에 알듯 말듯 그림들도 많이 보러 다녔다. 예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붉은 벽돌들이 뿜어내는 운치와 이 공간이 주는 멋을 가슴에 아로새겼다. 1980년 후반에 대학로 왕복 8차선 도로는 주말이면 교통 통제를 하고 자유 광장이 됐다. 원래는 차도인 곳을 누비는 쾌감은 억눌려 살던 앵그리 영맨들을 이 거리로 모이게 했다. 포장마차와 길거리 술판이 즐비하게 벌어졌고 사랑도, 다툼도, 재미도, 환멸도 모두 이 거리에 있었다.

 

아르코 미술관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전시가 한창이었다. 기호화된 텍스트와 미디어 아트로 이루어진 <옵세션> 전. 현대 미술의 난해성을 들먹이며 부정적인 관점을 갖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하지만 애당초 예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므로 난해할 것도 없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냥 조용히 느껴보는 것. 그러니 아, 어떤 똘아이 작가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따위 작품을 예술이랍시고 전시한 거야! 분노할 필요는 1도 없는 것이다. 그저 미술관을 천천히 느릿느릿 걷는 것만으로도 삶의 온도는 한 눈금씩 올라가니까 최대한 너그러워지자. 릴랙스~ 
게다가 요즘 젊은 미디어 아트 작가들은 현실 비판도 적나라하고 예술적 시도도 당차다. 평면 작업이 아닌 설치 예술에, 일방적 전시가 아닌 인터렉티브 아트여서 예술 보는 재미, 참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가 이 앵그리 영맨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도로를 막아 억지 자유를 주던 쌍팔년도의 주입식 자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열린 마음과 자유 의지다. 그들이 자유롭게 예술을 하도록 내버려두되 천천히 지켜보아 주는 것. 그리고 긍정해 주는 것.

 

커다란 설치 스크린에는 화가와 기자의 대담이 이어지고 있다. 마침 날을 세우고 화가가 이야기한다. 작품이 모호하다고요? 도대체 모호함이 뭐죠? 웃음이 쿠쿡 나왔다. 미디어 아트는 이렇게도 직접적으로 시전할 수 있다. 느끼게 하기보다 생각하게 한다. 작품 자체가 질문이 되기도 한다. 요즘 애들 버릇없는 게 아니고 엄청 똑똑하다. 각각의 의미와 개념으로 점철된 화면을 보다가 눈이 아파서 일어났다. 노안이다. 젊은 척 후드티까지 입었건만 하룻볕이 다르다는 걸 몸이 알고 있다. 안약을 넣기 위해 아르코 아카이브 센터에 들렀다. 와우, 마로니에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통창 앞에 아주 널찍하고 커다란 소파를 풍경을 향해 일렬 배치해뒀다. 푹신, 풍경 멍 때리기 최고다. 안쪽엔 각종 미술 서적과 예술 자료들을 비치해둔 아카이브 센터. 몹시 근사했다. 이런 공간은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여기 잠시 머무르는 것만으로 지적 감수성이 옆구리 콕콕 찔린다. 괜시리 책들을 훑다가 다시 아차차 눈! 널찍한 소파에 편히 앉아 안약을 두 방울씩 똑똑 넣었다.

 

늙지 않는 거리에서 나만 늙었다. 대학로 길바닥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종이컵에 소주 마시며 노래 부르던 사람들은 모두 늙었다. 그런데 우리는 또 늙지 않았다. 마음 한 켠을 이곳에 흘리고 갔는지 공원의 마로니에 나무도 어제 본 듯 반갑고, 생목이 터져나가는 오래전 그 가수도 반가워 덥석 아는 척할 뻔했다. 아주 오래전에도 젊은것들은 좀 버릇없었고 치기 만만했다. 예술도 실험 정신으로 똘똘 뭉쳤고, 공간에서 하는 연극 <관객모독>은 욕하고 물을 뿌렸는데도 연일 줄을 섰다.

인생의 모든 것들은 순환한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예술가들은 도전하고 우리는 자극받고 생각하고 다시 나아가고. 그러고 보니 우리는 늙는 것이 아니다. 성장하는 것이다. 더 큰 품으로 깊은 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나와 마로니에 공원에서 오랜만에 대학 선배들을 만났다. 함께 연극을 보기로 했는데, 어쩌면 그리 하나도 안 늙고 똑같냐며, 아직도 그대로네! 비누처럼 맨질맨질한 접대용 멘트가 난무했다. 그래도 눈물이 찍 날만큼 좋았다. 변함없는 이 거리, 여전한 이 사람들. 이들이 있는 한 내 생은 결코 늙지 않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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