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제로페이인가
누구를 위한 제로페이인가
  • 백경민 기자
  • 승인 2019.02.2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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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는 소상공인들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없애기 위해 서울시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모바일 간편결제 시스템이다. 수수료가 제로(0)라 제로페이로 이름을 달았다. 소비자에게도 40% 소득공제란 당근을 제시했다. 잘만 되면야 좋은 결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현장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하는 모양새다. 일단 결제할 때 사용자가 직접 금액을 입력해야 해 불편하기도 하고, 그간 누리던 카드 혜택을 포기할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물론 결제 방식 자체를 손보는 등 나름 개선 방향을 내놓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장에서는 응답하지 않고 있다.

 

냉랭한 시장 반응…‘건당 얼마’ 제로페이 동원령

“몰라요. 쓴 사람이 아직 없으니까…” 한 음식점주가 관심 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한 달 전쯤 제로페이 가맹점으로 등록했지만, 쓸 일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또 다른 가맹점 몇 곳에 들러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이었다. 심지어 손님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귀찮고 불편하다는 소리만 들었다. 한창 바쁠 때인 점심시간, 취재진은 1시간가량 계산대를 지켜봤다. 음식 점주들의 말마따나 대부분 카드를 꺼내들었다. 간혹 계좌이체로 결제하는 손님들도 보였다. 계산대에 놓인 제로페이 안내물이 초라해 보일 정도. 문밖을 나서는 손님을 쫓아가 봤다. 10명 중 8명은 아예 모른다고 말했고, 2명은 알고만 있을 뿐이었다.

다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다들 모른다는 제로페이, 어떻게 들여놓게 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여기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상인회에서 신청하라고 해서…” 그래서 상인회로 연락해 봤더니 돈 이야기가 나왔다. 서초구 소기업소상공인회에서 제로페이 가맹점으로 등록하면 얼마씩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발걸음을 옮겼다. 소상공인회 관계자는 “중소기업중앙회와 연계해 제로페이 가맹점 유치 시 건당 2만 5,000원을 받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중 5,000원은 소상공인회가 가져가고, 나머지 2만 원을 모집원에게 주는 식으로 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통반장까지 제로페이 영업…가맹점 확보에만 혈안?

성에 차는 실적을 보이지 못한 것일까. 심지어 통반장들까지 동원됐다. 지난해 12월, 며칠간 제로페이 가맹점을 유치하면 동 주민센터에서 수당을 준다고 했단다. 한 통장은 “3곳을 유치해 7만 5,000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얼마 전에 받은 문자 내역을 보여줬다. 언제까지 유치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안내였다. 돈을 미끼 삼아 반강제로 제로페이 가맹점을 늘린 꼴이다.

가맹점을 유치하면 준다는 그 돈. 서울시에서 중소기업중앙회로 내려주는 민간 보조금이다. QR코드를 만들고, 각종 홍보에 쓰이는 예산이다. 시는 건당 얼마씩 유치 수당을 주는 게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하면서 “범위를 넓혀 직능단체 회원들에게도 제로페이 가맹점을 유치하면 수당을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업 인력이 더 빵빵해진 셈이다.

 

자치구 ‘실적 압박’ 스트레스…시장 기능 역행

구청이나 동에서는 실적 압박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자치구별 순위까지 매길 정도라니 말 다했다. 1월 말 기준, 서초구는 온·오프라인 합쳐 500여 건 실적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하위권 수준이다. 한번은 실적이 낮으면 자치구별로 내려주는 특별교부금도 없다는 으름장까지 놓았다고 한다.

불편하고 모른다는 시장의 반응은 아는지 모르는지 어째 가시적인 성과에만 매달리는 모양새다. 편리하고 좋으면 누가 말 안 해도 쓴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숭실대학교 강기두 경영학부 교수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물론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공이다, 실패다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현재 시장의 반응처럼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제로페이가 되지 않을까.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다.

<HCN 매거진 서초> vol.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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