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말고 사람
봄 말고 사람
  • 임지영 / 갤러리스트
  • 승인 2019.04.05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꽃이 피는 얘기를 하기 싫다. 꽃을 보는 사람 얘기를 하고 싶다. 그림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다. 꽃보다 사람에, 그림보다 마음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구례로 꽃구경을 간 언니가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마치 우화등선처럼 전화를 걸어서는 꽃멀미가 난다며 이 꽃천지 좀 보라며. 사방에 산수유, 벚꽃 만발을 보여주는데 나는 그냥 꽃이 된 언니 얼굴만 보였다. 꽃물이 발갛게 든 두 뺨만 보였다.

옥수동 응봉산 개나리 꽃무지에 다녀왔다. 사람들은 모두 노랑 말괄량이 꽃천지를 찍느라 야단법석이다. 세상에서 제일 명랑한 꽃망울 속이라 그런지 소란도 잘 어울린다. 나이 지긋한 분들도 오늘은 봄의 신입생들. 노랑노랑 시끌시끌 귀엽다.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를 보고 왔다. 티켓팅을 위해 30분 줄을 섰고, 입장을 위해 30분 더 줄을 섰다. 줄 서있는 내내 옆의 사람들 이야기가 들렸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젊은 연인의 도란도란, 중년 훌쩍 넘긴 여고 동창생들의 왁자지껄. 자꾸 웃음이 났다. 호크니는 당연히 좋을 것이었다. 기막힌 색감과 정중동의 깊이가 남다를 것이었다. 

 

긴 줄을 선 우리가 좋아서 웃음이 났다. 호크니로 서로의 빛깔과 취향을 알아갈 연인들이 이뻐서 웃음이 났다. 그리 유명한 전시라니 문화생활 좀 하자며 신나있던 여인들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혼자서도 배시시 자꾸만 웃던 나는 좀 이상하게 보였을라나. 두고두고 기억될 경험이 될 것이다. 평일날 오후의 미술관 앞 행렬은. 데이비드 호크니 할아버지! 큰일 하셨어요.

 

집에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책을 읽었다. 《아침의 피아노》 철학자 김진영이 죽음을 앞두고 쓴 사유와 성찰의 짧은 문장들. 읽다가 그대로 눈물을 투두둑 쏟았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면서도 끝까지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사랑과 아름다움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그를 잃은 우리가 너무 슬펐다. 그가 남긴 몇 문장을 계속해서 어루만졌다.

하냥 한량같이 사는가도 싶다. 어쩌겠는가. 유독 놀고먹는 생을 좋아하는데. 함께 놀고먹는 이를 사랑하는데. 그리고 그런 호들갑과 유난한 삶이 좋다. 해마다 피는 꽃에도 펄쩍 뛰는 당신이 이뻐죽겠다. 그림 한 점에도 캬하 너무 좋네! 감탄하는 당신이 좋아죽겠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살아나갈 순 없다. 그러니 실컷 한껏 양껏 좋다 죽을란다.

봄꽃처럼 만발하다 스러질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