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길로 떠나다
사람과 길로 떠나다
  • 임지영 / 갤러리스트
  • 승인 2019.05.0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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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날씨가 반이다. 나머지 반을 사람이 풍경이 먹을거리가 채운다. 그런데 어느 한가지가 모든 걸 덮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밤새 세찬 봄비가 겨울의 바짓가랑이를 적시듯 내렸다. 겨울이 슬쩍 주저앉았다. 충북 영동으로 문화예술기행을 앞두고 있었다. 모두 친한 분들과 함께다. 게다가 <땅의 역사>로 유명한 박종인 기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이 여행에 <사람과 길>이라는 아름다운 부제도 붙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는데 아뿔싸 꽃샘 비바람은 마음을 바짝 졸이게 했다.

역시 운이 좋은 사람은 오던 비도 멎게 한다. 공기는 차가워졌지만 비만 안온다면야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지. 우리는 신나게 경부 고속도로를 달렸다. 우리가 처음 찾은 곳은 월류봉. 달도 아름다워 머무르다 간다는 영동의 제1비경이다.

 

월류봉
월류봉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풍경이란 한 눈에 탁 들어오는 풍경이라고 서글서글 인상 좋은 기자님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랜 여행이, 긴 여정이 그를 단련시킨 것일까. 모습도 이야기도 물처럼 부드럽고 온건하다. 어제의 큰 비로 때마침 불어난 강의 물살은 사납다. 거세게 흐르는 역사의 한 중간에 선 듯 이따금씩 우리는 숨을 고른다. 우암 송시열이 세운 서원과 유허비까지 돌아보았는데 나는 그보다는 서원의 못생긴 주춧돌이라거나 오래되어 비틀어진 문지방 같은데 손을 대보았다. 유구한 역사와 '딱'하고 마주하는 기분. 오래전 그 분과 마주치는 느낌. 역시 아는 것보다 해보는 것이 좋다. 물론 출입금지 팻말이 없을 때에만.

그가 버스에서부터 예고한다. 잔혹한 비극의 역사, 노근리에 대해. 6.25때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 일어났던 곳이다. 전쟁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처럼 아득하게 생각했지만 불과 7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결코 안일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노근리 쌍굴 다리에는 총알 자국들이 선명했다. 더더욱이 잊지 말자고 자국마다 하얀 페인트로 동그라미 세모로 표시해 놓았는데 그게 마치 하나의 비구상 예술 작품 같았다. 벽면 하나 가득 죽음의 하얀 도형들이 가득했다. 그가 토로했다.

 

ㅡ비극이 예술 작품이 된 것 같지 않습니까? 전 처음에 누가 작품을 해놓은 줄 알았다니까요.

그 옆의 노근리 평화 공원에는 피에타 석상과 비슷한 모자상부터 그들의 무고한 죽음을 기리는 조각 작품들이 세워져 있었다. 예술은 가장 근사한 애도의 방식이다. 조각들 하나 하나 공들여 보면서 아프고 슬픈 역사를 마주하며 마음 깊이 추도했다.

아까 내려오며 금강 휴게소 지나 고속도로 중간에서 버스를 세웠었다. 홍천 터널 구간 바로 전 안전한 갓길이었다. 우리는 난생 처음 고속도로 갓길을 걸어 오래 전에 폐쇄된 구도로를 걸어보았다. 그 곳은 경부 고속도로 맨 마지막 완공 구간인 당재 터널이었다. 우리나라 경제의 대동맥이 이어진 역사의 현장. 그 곳에서는 터널 붕괴로 여러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한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가난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누군가의 아들로서 애쓰다가 짧고 아픈 생을 마감했을 그들. 우리가 딛고 선 오늘은 그들의 헌신인 셈이다. 우리가 누리고 사는 당연한 것들은 이름 모를 그들의 선물인 것이다. 그걸 잊지 말자고, 잊어서는 안된다고 그는 재차 이야기했다. 사람 좋은 미소는 긴 여정의 단련이 아니라 깊은 사유의 산물이었구나.

 

당재터널
당재터널

뇌과학적으로 사람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세가지는 독서, 여행,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한다. 짧은 당일치기 여행 후에 생각도 많아지고 쓸 이야기도 많은 걸 보니 그 말이 딱 맞다. 직지사의 벚꽃이 난분분 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아래서 꽃비를 맞으며 저마다의 포즈로 인생 사진을 찍었다. 옥계 폭포로 올라가는 길, 응달의 벚나무는 아직도 앙다문 꽃망울이다. 작은 체구에도 어찌나 꿋꿋한지 한껏 쓰다듬어 주었다. 곧 피어날테다. 또 지고말테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때가 되어야 피고 지는걸테다. 하루를 일분도 허투로 쓰지 않고 좋은 풍경 속에서 좋은 사람과 좋은 생각들로 가득 채워 왔다. 늦은 밤 도착한 서울에는 겨울이 그새 꽁무니를 빼고 온데간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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