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詩 사용법
나의 詩 사용법
  • 임지영 / 갤러리스트
  • 승인 2019.05.1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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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는 다 좋아한다. 육고기, 바닷기, 콩고기까지도. 예술을 좋아한다. 그림, 음악, 문학 등. 고기도 생겨자 올린 목살 제일 좋아하듯이 문학 중에는 시를 제일 좋아한다. 그런데 시 좋아한다고 하면 뭔가 닭살스럽고 철없는 문학 아줌마로 보는 면이 있어 나의 깊은 시심을 숨기며 살았다. 그래도 시집은 늘 손에 닿는 곳에 두었다. 힘든 시간에는 아무것도 읽기 싫다. 어려운 틈에는 아무것도 쓸 수 없다. 육체의 피로와 노독 앞에 예술이니 인문학이니 다 개 풀 뜯는 소리가 된다. 나는 늘 삶이 그리되지 않도록 애쓰고 살폈다. 좀 늦되고 둔해 몸이나 맘 상하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서 늘 나에게 사려 깊었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가만했다.

마음을 다독이는 일에 가장 강력한 처방은 시였다. 긴 글 읽을 여유가 없을 때, 신경 과다로 마음이 지쳐있을 때, 시집은 생의 간단으로 내게 온다. 얇고 가볍게, 따뜻하고 의미 있게. 물론 숨바꼭질 같은 시들도 있다. 도대체 행간에 뭘 숨긴 건지 시집을 거꾸로 들어 탈탈 털고 싶은 시들도 있다. 많다. 내가 좋아하는 시는 마음을 뇌까려둔 시다. 무심한 듯 자기 언어들을 툭 하고 까발려놓은 시. 그것이 관념이면 생각하면 되고 구체면 감각하면 된다. 다만 이상의 제10의 아해들만 안 나오면 된다. 게다가 그 아해들은 정신없이 질주하니 나는 여전히 걔네들이 무섭다.

 

솔직히 유명한 작가들의 시들만 읽었다. 것도 취향에 맞는 것들로만. 시집 한 권을 다 읽어도 몇 편 정도 건져 올리면 좋았다. 얼마 전 의미로운 모임에서 시인 한 분을 알게 됐다. 아름답고 우아한 분이었는데 목소리마저 시처럼 여여했다. 시집 한 권을 선물 받아 한밤에 그 시들을 마주했다. 시가 놀라웠다. 얇지만 묵직한 울림, 슬프지만 따뜻한 삶. 언뜻 그녀에게 보았던 우수가 시 속에 고스란했다. 이래서 예술가들은 거짓말을 못 한다. 더러 정제되지 않은 마음들이 시 속에서 발현되며 생동했다. 

 

<이젠 웃어>

내가 푸른 봄, 
봄처럼 
꽃피는 일, 햇볕 송이송이 쏟아지는 일 
다반사로 일어나는 줄 알고 그만 
새겨 놓을 생각도 못했지 


그 땐 사랑도 화재처럼 일어나고 
이별, 그거 
세상이 전부 연소되더군 


참 
가지런히 살아가는 일이 어렵다는 것 
알게 되면서 내 안에 낯선 거인이 자라더군 
이젠 그 거인과 살아 
웃으면서 

ㅡ온미영 <내생의 눈부신 잉태> 

 

우리는 사회의 나이로는 늙은 여자들이다. 사랑은 지나온 것이어야 하고 이별도 아주 아득해야 한다. 하지만 시인의 사랑은 바로 조금 전 타올랐고 바로 직전에 전소됐으며 지금 다시 여기서 불붙을 것만 같다. 이젠 웃기도 하면서. 삶을 안기도 하면서. 오래 묵은 나이를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몸으로 세월을 껴안고 괜찮아 계속 와 봐. 나 여기서 너를 기꺼이 안아줄게. 반듯하게 마주 선다.

 

<나이의 향기>

나무가 한 자리에 오래 머문다고 
봄을 거절하는 것을 보았나요 
들꽃이 한 철 폈다 져도 새해 다시 
새벽처럼 일어나는 힘을 보세요 


나이는 세상의 시린 발들에게 
양말을 신기는 일이죠 
마음을 치는 이야기로 한 세계를 이루고 
그렁한 눈빛으로 세상을 닦아주어야 해요 
나이는 계속 눈을 뜨는 일이에요 
그래서 늘 새로워요 
대단하게 자랑할 것도 없어요. 

 

시들은 생의 슬픔과 긍정을 변주했다. 분명히 아픈데 어딘가 따뜻했고 환하게 봄빛인데 또 어딘가 쓸쓸했다. 삶에 한가지 색은 없다. 우리 집 순한 강아지 예쁘기만 한 눈도 가만히 들여다보면은 슬프기 그지없고, 사나운 3동 검은 고양이 눈도 지난번 마주쳤을 때 눈싸움해보니 순둥순둥하더라. 무엇이든 누구라도 한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은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루만져 품에 들이고 있었다. 품는다는 건 그저 아픔을 견디는 것과는 다르다. 고스란히 그 모습 그대로를 안아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는 새롭고 뜨겁게 잉태하는 삶이었다.

정말 모처럼 언어들의 생동을 만났다. 시의 감동을 만났다. 제목들이 눈앞으로 튀어 오르는 통에 소리 내어 웃었다. 신의 한 수, 삶에 올리브유를 붓고 싶다, 기꺼이 뜨거운 것, 감동의 습관, 머리 흰 똥, 허공의 국수, 경건한 광기... 

제목으로 마음을 낚여 시어들로 뒤흔들렸다. 맞다. 꼼짝없이 잡혔다. 당분간은 요 얇고 어여쁜 시집이 내 삶의 비밀의 화원일테다. 푸르게 싹 틔우고 붉게 꽃 피어나는 요요 시들 속에 내 은근한 봄의 비밀들을 몽땅 감춰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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