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정법원의 친절한 얼굴
서울가정법원의 친절한 얼굴
  • 박소정 기자
  • 승인 2019.07.02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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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로 들르셨나요?” 바쁘게 오가는 발소리와 끊이지 않는 타자 소리, 공무원과 민원인의 말소리로 가득한 민원실에서 서성일 때 이 한 마디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 여한명 자원봉사자는 서울가정법원을 헤매는 낯선 이들을 향해 말을 건넨다. 미군 부대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통역봉사와 민원봉사에서 18년째 활약 중인 여한명 자원봉사자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오늘은 어떤 활동 중이셨나요?

가정법원 종합민원실에는 여러 종류의 서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이혼도 소송이혼, 합의이혼, 미성년 자녀의 유무, 위자료 청구 등 상황에 따라 필요한 서류가 달라져요. 그래서 방문객에게 어떤 일로 왔냐고 물어보고 해당하는 서류를 골라서 작성법을 설명해줘요. 외국인이 온다면 영어통역을 도와주기도 해요. 재판이 있으면 재판 과정 동안 통역을 하고요. 가정법원에서는 월요일마다, 수요일은 검찰청에서, 목요일은 코엑스에서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그 외에 국제 대회에서 종종 봉사하고 있어요.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도 했고 금년 전국체전 자원봉사도 신청해놨어요.

 

약 18년째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자원봉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은퇴하고 쉬고 있는데 신문에 공고가 났어요. 2002년 월드컵 때 영어통역 자원봉사를 모집한다고요. 영어통역이라면 내가 할 수 있겠다고 신청했는데 그때 재미를 봐서 18년째 하고 있어요. 서울월드컵경기장 밖에서 안내하는 업무를 맡았거든요. 그런데 처음 이틀 동안은 외국인이 제게 말을 안 걸었어요. 그래서 셋째 날 A4용지에 ‘English Speaking Volunteer’라 써서 등에 붙였어요. 그때부터 경기장에서 제일 바빠졌어요. 그러다 하루는 무전이 와서 뛰어가니깐 영국중계차가 지정되지 않은 곳에 서 있더라고요. 공무원들이 차 위치를 옮기라고 하는데 버티고만 있어요. 그때가 9·11테러로 보안이 굉장히 강했을 때거든요. 보안 관계상 옮겨야 했는데 중계차 책임자는 나오지 않고, FIFA 회장에게 서울시 공무원에게 이야기했다고 거짓말하면서 서로 미루기만 하고 시간만 끌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영어로 싸웠습니다. 빨리 차를 안 옮기면 선을 끊고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깐 눈이 둥그레져서 구경하는 사람이 생겨요. 그런데 그 사람들도 주변에 말 통하는 사람이 없으니 누구 말을 듣겠어요. 어쩔 수 없이 차를 옮기죠. 그때 자원봉사가 이런 거구나 알았어요, 일단 자원봉사를 하면 맡은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서 힘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거예요.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특이하세요.

다른 봉사활동을 하시면서도 힘드실 때가 있으신가요?

2015 서초서리풀페스티벌 자원봉사
2015 서초서리풀페스티벌 자원봉사

오래 서 있으니깐 체력적으로 힘들더라고요. 자원봉사를 계속 하려면 힘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마라톤을 하지 않지만 화요일마다 친구들과 등산을 하러 가요. 내일은 강릉으로 갑니다. 민원안내를 하고 있으면 종종 마음이 급하신 분들이 오시기도 합니다.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그것도 몰라요? 됐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자원봉사자는 그런 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안 돼요. 기관에 들르는 민원인 개개인의 사정은 다 다르거든요. 예를 들어 일반 업무차 온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이혼을 하러 온 사람도 있어요. 그런 마음도 세심하게 헤아려줘야해요. 또 코엑스에서 자원봉사를 하려면 서울 시내를 다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음식점이 어디 있는지도 외워놨어요. (웃음)

 

자원봉사 활동 기록을 많이 남겨놓으셨다고 들었어요.

기록은 제 습관인데요. 직장에서 일할 때 회의록을 쓰잖아요. 그것처럼 회의에 참석했다든지 모임에 참여했다든지 등의 그 날 기록을 해놓습니다. 자원봉사를 하면 활동 내용도 적지만 사진도 찍어 함께 올려놔요. 나중에 사진은 생생한 증거물이 돼 다시 기억하고 설명하기가 좋아요.

 

후에 엄청난 자산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선생님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이제 80살이 됐잖아요. 앞으로 내리막길이에요. 자원봉사도 이제 조금씩 줄이려 합니다. 힘이 없어지잖아요. 힘닿을 수 있는 만큼 하고 정리하는 삶, 그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HCN매거진 서초》 vol.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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