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2018)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2018)
  • 최하진 / 무비 큐레이터
  • 승인 2019.10.0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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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만의 시간

-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2018)

만남

톨스토이가 항상 옳았다고 생각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할 때이다. 인간의 마음 안에는 사랑이 있고, 인간은 자신의 내일을 알 수 없으며, 인간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 그 진리는 나이를 먹거나 때와 장소가 다르더라도 늘 옳았다. 더하여 인간은 내일을 알 수 없지만 만남 또한 예측할 수 없다. 최승자 시인의 <여자들과 사내들>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랑은 언제나 / 벼락처럼 왔다가 / 정전처럼 끊겨지고 / 갑작스런 배고픔으로 / 찾아오는 이별” 사랑도 그러하고 여자와 남자의 만남도 그러하다. 이 영화는 법정이라는 무대를 빌려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버린 인연 혹은 관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중요한 축으로는 종교를 빌미로 한 미성년자의 생명권에 관한 법의 영역을 다루기도 하는데,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관점을 견지할 수 있는 영화다.

 

법과 사람 사이

존경받는 가정법원 판사인 피오나(엠마 톰슨)는 완벽한 재판을 추구하기에 집에 돌아와도 재판에만 몰두한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일밖에 모르는 건조한 그녀에게 남편 잭(스탠리 투치)은 다른 여자와의 만남을 선포하고 부부 생활에 위기가 찾아온다. 그런 와중에 소년 애덤(핀 화이트헤드)의 재판을 맡게 되는데, 3일 안에 수혈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아이는 종교적인 이유로 치료를 거부한다. 곧 만 18세가 되는 애덤은 법원의 명령에 의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이 중요한 재판을 앞두고 피오나는 그를 찾아가서 아이를 만나보기로 한다. 이제 기타를 배운 지 4주 된 애덤이 자기를 찾아와준 판사님이 너무 놀라워 얘기를 주고받다가 이 곡을 치게 된다. 그것은 192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의 시에 곡을 붙인 <버드나무 정원 아래서(Down by the Salley Gardens)>인데 아일랜드 민요라고 한다. 피오나가 반주에 맞춰 나지막이 노래를 불러주었고, 그 일은 애덤에게 황홀하고 감동적이었다. 애덤은 고집을 꺾고 수혈을 받아서 살아나지만, 그는 자신이 가졌던 신념의 자리에 인간 피오나를 손님처럼 맞이하고 길을 나선다.
‘칠드런 액트’란 1989년 제정된 영국의 아동법을 지칭한다. 법정이 미성년자(아동)와 관련한 사건을 판결할 때 최우선적으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 작품 속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던 애덤은 만 18세가 되려면 3개월이 부족하기 때문에 법원의 판결에 따라 부모님이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저한테 왜 그랬어요

애덤은 종교적인 신념을 버리고 살아난 이후 새로운 삶을 꿈꾸며 시를 쓰고 기타를 치고 연극을 한다. 피오나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던 애덤은, 그러나 자신이 발견한 삶을 피오나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판사로서 피오나는 법정에서 늘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그녀의 명성을 빛내는 조각과도 같았다. 피오나가 내린 결정으로 인해 애덤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그녀가 나머지 퍼즐 조각까지 맞출 수는 없었다. 피오나에게 닿을 수 없었던 애덤은 좌절하고 결국 만 18세가 넘자 스스로 삶을 결정하고야 만다. 피오나에게는 “저한테 왜 그랬어요….”라는 말을 남긴 채. 처음 애덤을 살린 것은 아동복지법이라는 법의 판결이지만, 애덤의 눈을 감게 한 것도 성년이 되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법이었다. 사랑이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또 그것이 아니면 뭐라고 설명할 수도 없는, 어떤 지독한 인연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떤 선택지가 우리 앞에 놓여있는지 알 수 없고, 또 그 선택이 옳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그저 지나고 나면 운명이라 여길 뿐이다.

 

함께 볼 영화 - 금지된 사랑
아이 엠 러브 (Io sono l'amore, I Am Love, 2009)

 

상류층 부인인 엠마는 지루한 일상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중, 아들의 친구인 요리사 안토니오를 만나고 그와의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 엠마 역의 틸다 스윈튼의 섬세하고 우아한 연기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일상화된 규범과 도덕에 파문을 일으키며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마음을 나누는 사랑의 조건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함과 동시에 사랑이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임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HCN매거진 서초> Vol.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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